2023.08.11-14. Cologne. 번아웃을 인정하게 만든 쾰른 여행.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결국 나는 쾰른행 비행기에 올랐다. 몇 달간 내 몸과 마음은 번아웃과 지속된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증의 신호까지 보내고 있었지만 내 이성은 그 모든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고민했다. 지금 이 시점에 내가 쾰른까지 가서 크로스핏 트레이너 교육을 받는 것이 옳은 걸까, 그리고 가지 않는다면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성과 논리에 설득당한 나는 그렇게 쾰른에 도착했고, 꾹꾹 억눌러 왔던 진심과 현실은 늦은 밤 혼자 있는 호텔 방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지나치게 고통스러워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이미 했어야 했으나 고집부려서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나갔다.

 

가장 먼저 크로스핏 트레이닝 주최 측에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교육에 아파서 참석하지 못하는데, 규정상 환불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으니 크레딧으로 바꿔서 다른 코스에 등록하게 해 줄 수 있냐고. 10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노티스였기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더라도 상관없었다. 150만 원 정도의 등록비를 날려도 상관이 없다고 느꼈을 만큼 나는 고통스러웠다. 감사하게도 크레딧으로 변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덕분에 스톡홀름에서 크로스핏 트레이너 교육을 수료했다.

 

그다음에는 Kry (스웨덴의 온라인 의료 서비스 앱)를 통해서 온라인 상담 예약을 했다. 사실 2주 전, 상담을 하려고 했었다가 ‘아냐, 괜찮아. 어차피 지나갈 감정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질 거야.’라는 이성에 설득당해서 예약을 취소해 버렸었다. 지금 돌아보니 내 몸과 마음이 정말 간절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생각과 감정이 몸과 머릿속에 가득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 걱정, 슬픔 등의 감정이 아주 오랫동안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주 긴 밤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 앱을 통해 GP와 통화를 했고, 다음 주 초 전문의가 내게 전화를 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당장 눈앞에 닥친 해야 하는 일들을 마쳤다. 이제 나는 뭘 하지?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월요일 오전. 남편도 없이 타국에서 혼자 오롯이 내 감정, 내 생각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겁이 덜컥 났다. 쾰른에 온 목적은 단 하나, 크로스핏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는데 목적이 없어지니 나는 길을 잃었다. 쾰른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의 축소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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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이 여행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스톡홀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 힘든 감정과 생각을 인정하게끔 도와줬기 때문에. 슬픔 속에서도 혼자서 뽈뽈거리며 내 체력이 허락하는 최대한 쾰른 여기저기를 잘 구경하고 다녔다. 토요일인가 일요일에 비가 많이 내렸던 날, 우산이 없어 비를 피한다고 한참을 멍하니 혼자 서서 건물 밑에서 기다렸던 기억도 소중하고, 혼자서 펑펑 울고 또 울었던 기억도 선명하고,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우버로 호텔방까지 배달음식을 시켜서 외로움과 괴로움을 달랬던 슬픈 시간도 지금은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진다. 이 여행 덕분에 나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올라갈 수 있었다.